중년은 인생의 절반을 지나온 시점이지만 새로운 시작보다는 ‘감소’와 ‘소진’의 이미지로 채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직장에서는 역할보다 나이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지고, 자녀나 부모를 돌보며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40대 중반에 접어들며 하루하루를 해내긴 했지만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라는 질문이 가슴 한편을 채우기 시작했죠. 그때 만난 것이 스페인어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취미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이 언어는 제 인생에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는 자극제가 되었고, 결국 제 삶의 2막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생긴 변화들은 단순히 언어 실력의 향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삶을 바라보는 시선, 내 자신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었습니다. 오늘은 스페인어 공부 통해 중년인 저의 삶에 생긴 긍정 변화들을 공유하겠습니다.
1. 언어가 아닌 ‘자존감’을 배웠다
처음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가장 놀랐던 점은 제 자신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이걸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 '이 나이에 외국어가 되겠어?'라는 불안감이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그런데 매일 단어 하나를 외우고 문장 하나를 이해하며 작은 성취를 쌓아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자신감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인어 문장을 처음으로 완성해서 말했을 때, 누군가와 짧게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었을 때, 그 성취는 단순히 외국어를 했다는 기쁨이 아니라 ‘나도 아직 배울 수 있고,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존감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생활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예전엔 쉽게 짜증 내던 일도 여유롭게 넘기게 되었고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더 따뜻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스페인어는 단지 외국어가 아니라 제게 자존감이라는 언어를 가르쳐준 교사였습니다.
2. 매일 30분, 삶의 리듬이 바뀌다
중년 이후에는 삶의 속도가 달라집니다. 일정한 루틴이 무너지기 쉽고 목표 없는 시간들이 늘어납니다. 퇴근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TV를 켜고 주말에는 누워만 있다가 하루를 허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공부하기로 결심한 뒤로 저의 하루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단 15분, 스마트폰 앱으로 단어를 듣고 따라 하며 시작했습니다. 점차 루틴이 생기면서, 지금은 하루 평균 30분을 꾸준히 학습하는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이 학습 루틴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습니다. 하루에 단 30분이지만 그 30분이 제게 하루의 중심축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피곤해도 이 30분은 지키려고 노력했고 그 시간 덕분에 자연스럽게 다른 생활 패턴도 정돈되기 시작했습니다. 늦게 자던 습관이 줄고 아침 기상 시간도 규칙적으로 변하고 간식과 커피를 줄이며 집중력을 높이는 식단도 관심을 갖게 되었죠. 이처럼 스페인어 학습은 ‘시간 사용의 재구성’을 가져다줬고 그 결과는 스트레스 완화, 에너지 회복, 일상 만족도의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3. 새로운 인간관계와 가능성, 제2의 인생이 열리다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가장 놀라웠던 변화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연결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나이, 직업, 지역과 상관없이 외국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저의 인간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확장되었습니다. 온라인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역 문화센터의 스페인어 회화 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50대 이상의 학습자들과 꾸준히 교류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언어 학습을 넘어서 서로의 고민과 경험을 나누고 응원하는 진짜 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어를 통해 작은 일거리도 생겼습니다. 지인의 여행 동행 통역을 맡게 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중년 스페인어 입문자에게 학습법을 소개하는 소규모 강의 기회도 얻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는 “외국어 하나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직장이 전부였던 삶에서 나만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삶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이 들기 시작했죠. 중년 이후에는 무언가 ‘잃는 일’이 많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스페인어는 저에게 잃는 대신 다시 얻는 인생 2막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결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 중 누군가는 “나도 뭔가 해보고 싶은데, 너무 늦은 거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딱 좋은 시기입니다. 저는 스페인어를 통해 내면의 자존감을 되찾았고 하루를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스페인어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연결되고 직장 밖에서도 활력을 얻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매일 단어 하나 외우고 짧은 문장을 말하는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중년은 변화가 아니라 회복의 시기일 수 있습니다. 스페인어는 그 회복을 가능하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줍니다. 혹시 지금 막막한 마음이시라면 주저하지 말고 단어 하나, 문장 하나부터 시작해 보세요. 당신의 인생 2막은 지금 이 순간, 조용히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도 이렇게 말하게 될 겁니다.